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By 최정글로리아 June 24, 2018 10:45, 조회수: 58


  김영하 작가는 거침없다. 독서가 간접경험이라하면 나는 이 작가를 통해서 많은, 아마도 나 혼자로는 결코 경험하지 못할 쇼킹한 경험들을 한다. 간첩에서 알콜중독자는 기본이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청년을 연행해서 성폭행하는 경찰이 없나, 여자와 잔 신부님이 없나. 연쇄 살인범, 동성애자, 무숙자, 폭주족, 성폭행과 간음... 보통 사람들은 행여 알아도 쉬쉬할 문제를 ‘목마를 때는 물을 마신다.’는 당연한 말을 하듯, 거리낌 없이 한다. 그리고 그런 언급들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을 뿐 더러는 가식없는 공감도 느끼게 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적인 시원함도 느끼게 한다.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지만 캥기는 게 많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인 내 그릇으로는 감탄을 넘어서 존경스럽다.

  그는 언뜻 무라까미 하루끼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그들은 피터 팬 같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에너지는 끊임없으며 아무리 칙칙한 이야기를 해도 어두운 그림자는 없다. 본인도 아는지 김영하 작가의 단편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에는 그림자없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건장한 사내 냄새를 풍기는 그 두 작가에게서는 바가지 긁는 마누라나 찡얼대는 애새끼들, 허구헌날 쪼아대는 상사 앞에서 비실대며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에 시달리는 보통 사내들의 구질스럼이 없다. 청소년을 성폭행하는 경찰이 쿨한 사람처럼 보이게도 하고 냉혹한 연쇄 살인범이 그 자신감으로해서 마치 신뢰할만한 인물인듯 느껴지기게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지레 쫄아서 글로 써낼 엄두도 못낼 상황으로 독자를 종횡무진 끌고 다니는  그들의 힘은 어디에 근거하는 걸까.

  날이 하도 더워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가면 늘 한국 서가를 훓어본다. 책은 몇 권 안된다. 그래도 대부분 내가 읽고 싶어 했는데 아직 접하지 못한 책들 몇 권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미 비포 유’를 찾아냈다.

김영하 작가를 처음 대면하기는 ‘빛의 제국’이었다. 간첩으로 이북에서 넘어왔다가 20년간 지령이 없이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던 이가 뜬금없이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어쩔줄 몰라 하루종일 헤메는 이야기였다. 재미있어서 단숨에 봤다. 그 후에도 기회될 때마다 그의 작품을 눈여겨 봤다. 어떤 건 기대에 못미치고 어떤 건 삼빡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에는 많은 반전과  신비함이 있다. 외딴 섬에 고립된듯한 두 소년의 이야기이다. 고속버스 터미널의 화장실에서 어린 여자 아이를 엄마로 태어난 소년과 언젠가부터 말하기를 그친, 말을 못하는 소년. 두 소년들이 함께 자라며 한 소년이 하고싶은 말을 통역같이 읽어주는 관계의 흐름이 신비롭다. 결핍된 환경안에서 형성된 두 소년의 애착관계는 언뜻 헷세의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관계가 연상되고 데미안으로 비춰지는 소년이 자아와 힘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싯달타라던가 코엘료의 순례자가 생각난다. 

  김영하나 하루끼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내게 사무친 공감을 주어 사랑에 빠지게 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늘 읽기에 흥미롭고 신선하며 재미있다. 믿고 읽을 수 있는 두 작가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