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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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글로리아 June 19, 2018 22:46, 조회수: 63



내가 신혼 초일 때였으니 어느새 거의 반세기전의 일이다. 바다를 너무도 좋아하는 어느 영국 부부가 태평양에서 표류하다 한국 원양선에 의해 구조된 일이 있다. 표류하던 사람을 구해놓고는 구한 사람들이 흥분해서 매스컴마다 우리 나라 원양선이 구했다고 시끌시끌 했다. 그 부부는 너무나도 바다로 가고싶어서 집과 가진 모든 걸 팔아 요트 한 채를 마련한 거였다. 

부푼 마음으로 긴 항해의 길을 나섰는데 그만 출발 하자마자 고래가 와서 부딪치는 바람에 배가 박살났다. 꿈처럼 행복했던 부부는 졸지에 구명보트 하나에 몸을 담고 파도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그 후 백 여일, 그들은 온갖 역경속에서 물고기는 물론 바다 새와 거북이를 잡아 연명하며 표류했다. 

웬일인지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오지 여행이라던가 무슨 탐험에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아문젠의 탐험 이야기도 그랬고 리빙스턴이나 스탠리, 마크 트웨인, 김찬삼, 잭 런던 같은 책을 만나면 읽고 읽고 또 읽었었다. 그런 책은 대개 무슨 줄거리라거나, 결론, 혹은 주장하는 가치관 같은 것 없다. 오직 벌거벗은 인간이 혹독한 자연 앞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버티는 상황만을 보여준다. 

아무튼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걸 아는 남편이 그들이 구조된 다음에 나온 ‘베일리 부부 표류기’ 책을 사주었다. 손바닥만한 책이었는데 그 책이 몇 년전 새로 출간됐다. 누우렇게 낡아 종잇장이 너덜너덜 떨어지는 옛날 책 옆에 같은 내용의 새 책을 꽂아놓고 내가 웬지 뿌듯했다. 마치 내 지난 결혼생활 40년이 손바닥만한 구명보트에 의지해 표류하며 버텨낸 기분이었다.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속으로’도 그런 류의 책이다.  

1996년, 에베레스트 등정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을 마침 그 등반대에 참가해서 정상까지 오른 후 살아 돌아온 생존자, 존 크라카우어가 쓴 사건의 전말이다. 기자인 그는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정말 산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많은 산행 경험이 있는 그는 결혼하면서 등반을 그만 두었는데 어느 날 한 잡지사에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참여해 기사를 쓸것을 제의 받는다.

에베레스트라면 모든 산악인의 꿈일 것이다. 아니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곳에 가고싶어 하는 동경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는 산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상태와 희박한 공기 이외에도 많은 재정적 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곳이어서 결국 그곳에서도 돈을 받고 고객을 정상에 올려주는 비지니스가 생겼다. 

일인 당 6만 오천불. 당시 좋은 집 한 채 값이다. 세상엔 언제나 돈이 너무 많은 이들은 항상있어서 두 팀의 등반대가 각각 8명의 고객을 이끌고 같은 날 산행에 나섰다. 워낙 험한 산이기에 곳곳이 아슬아슬 혼자 넘기도 힘든 곳이 있어서 많은 인원이 같은 날 갈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날, 뉴질랜드팀과 시애틀팀, 상업적인 이 두 팀이외에도 비상업팀인 타이완팀 역시 등반에 나섰다. 기자라는 사람이 기사를 쓰기 위해 참여했으니 그 기사가 나간 후의 자신들의 명성에 신경이 쓰였던 걸까. 

 아무튼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 산행이라해도 정상에서 오후 한 두시를 넘기면 위험하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정상이 코 앞이라해도 결연히 발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두 팀, 아니 세 팀 모두 정상에의 갈망이 너무 커서였는지 시간을 너무 지체했고 그 사이, 쾌청했던 날은 순식간에 한치 앞을 바라볼수 없는 심한 눈폭풍으로 변했다. 그 속에서 뉴질랜드팀의 리더를 비롯 6명이 사망했고 다른 팀 역시 리더와 대원들이 실종, 사망했다. 

크라카우어가 그 일을 겪은 후 기록한 것이 이 책 ‘희박한 공기속으로’ 이다. 

함께 먹고 자고 꿈을 나눈 동료가 한 순간에 바로 옆에서 죽는다는 건 어떤 걸까. 뉴질랜드팀의 리더는 자신이 인솔한 팀 대원들이 낙오되고 죽자 정상 가까이에 서서 하룻밤을 그냥 새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무전기로 연결됐을 때 베이스팀원들이 제발 내려오라고 애타게 종용했지만 그로서는 차마 살아서 내려올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때 그의 아내는 임신 7개월이었다.  

크라카우어는 글쟁이다. 그의 간결하고 힘있는 문장은 책을 잡은 순간 부터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세번을 읽었다. 처음은 정신없이 문장을 따라가느라 사건의 개요만 훓을수 있었고 두번째는 거기 나와있는 사진과 글을 맞추어가며 누가 누군지,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살피는데 꽂혀있었고 세번째는 사건과 인물과 전체의 흐름을 내 속도로 읽다 머무르다 하며 폭넓게 읽어낼 수 있었다. 세번씩 읽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기는 커녕 다시 또 읽고 싶다.

읽은지 얼마간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책 속의 상황이 마치 내게 일어났던 일마냥 문득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아마 나는 앞으로 몇번은 더 읽게 될 것이다. 내가 신혼때 읽은 ‘베일리 부부 표류기’를 사십년 넘게 가까이 두고 시시때때로 읽었던 것 처럼. 이상하게 그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비밀스레 자리잡고 있는 온갖 잡스런 생각들이 마알갛게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겸손에 가까운 잔잔한 마음이 되고 어떤 위무감마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