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로맹 가리

세상에 이런 엄마가!

By 최정글로리아 July 27, 2018 17:40, 조회수: 63

어렸을 때 정말 숙제하기가 싫었다. 글짓기 숙제와 그림 숙제 빼고. 글짓기 숙제를 하다보면 왜 이런 재미있는 숙제를 이렇게 조금 내주는 걸까, 아쉬웠었다. 그런데 딱 한 주제, 어머니 날에 써오라는 어머니 예찬만은 도저히 쓸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거의 신화처럼 철옹성처럼 떠받드는 어머니의 위상에 눈꼽만큼의 반발이라도 내보이는 날에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건 힘없는 아이의 몫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좋은 학교에 밀어 넣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언어폭력이라든가 정서적 학대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무튼 엄마와의 채무관계가 다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달랑 나만 엄마와의 관계가 힘든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주위의 많은 이들이, 정말 많은 이들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정서적 문제를 안고 살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이라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위로되는 일이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걸까? 그보다 더 큰 아픔은 없으니까 그걸 바라보며 위안 삼으라고?

아무튼 많은 글들 속에서 작가의 존재에 드리워지는 엄마의 그림자가 늘 내게 흥미로웠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의 어머니를 주의해서 보아왔는데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을 읽고는 그의 엄마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는 세상에 그런 엄마는 듣도보도 못했다. 사생아로 태어난 로맹가리의 엄마는 로맹 가리를 키우며 자식을 위해선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된 나날을 살았다. 자신은 고기를 안좋아한다며 야채만 먹는 정도는 흔한 스토리다. 맹렬히 자식을 부추기며 자식이 어느 날엔 작가, 외교관, 비행기 조종사가 될꺼라고, 전쟁에 나가 혁혁한 공을 세우고 훈장을 받을 아이라고 동네 방네 떠들며 모든 상황에서 열렬히 부르짖는 엄마! 모든 십대가 자신의 엄마의 아주 작은 돌출행위도 못견디게 혐오하는 시절이건만. 로맹가리의 엄마는 로맹가리를 군중들 앞으로 내세우며 '이 아이는대단한 사람이 될 아이야. 이 아이는 너희들 따위와는 다른, 아주 대단한 아이야. 두고 봐.' 하며 처절하게 으스댄다.

이 넓은 천지에 의지 할 사람이곤 단 둘이었기에 그랬을까? 부담감 때문에 질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챙피해서 도망가고 싶기도 했을텐데. 그런가 하면 어느 날 동네 아이가 '너의 엄마는 창녀야.' 하는 말을 해서 싸움을 하고 조금 다쳐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다음에 그런 말을 듣거든 너는 팔다리 다 부러지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와야 한다.'고 이른다. 엄마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이라면 목숨도 내놓을 마음으로 살라는 거다. 무섭다. 로맹 가리는 엄마의 그런 언행들이 부담이 되었을 텐데도 자신의 엄마를 지극히 사랑한 것 같다. 새벽의 약속은 그가 엄마에게 했던 약속을 말한다. 

약속대로 그는 외교관도 되었고 작가도 되었고 전투기 조종사로 훈장도 받았다.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은 아직 기억할 수 있을 상큼한 배우 진 세바크와 결혼도 했다. 그 후 진 세바크는 아마도 자살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죽음 맞았고 로맹 가리 역시 자살로 그의 극적인 인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많은 성취를 했음에도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로맹가리가가 너무 재미있게 글을 써서 킬킬 웃어가며 읽기는 했으나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 울고 싶었다. 

로맹가리는 모든 작가에게 일생을 통해 오직 한번만 수여하는 콩구르 상을 두번 받았다. 새벽의 약속으로 상을 받은 후의 작품들에 대해 비평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에밀 아자르 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써 또 한번 받을 수 있었다. 권총 자살을 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에밀임을 밝혔다. 

어떤 엄마가 훌륭한 엄마인 걸까? 곱게 곱게 키워 안락한 무명의 삶을 즐길수 있게 하는 것? 온갖 갈등을 주어 예술가가 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